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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유금상 소위를 추모하며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6월 06일 14시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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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서부전선 308고지에서 대간첩 작전 중 간첩이 쏜 총알을 머리에 맞음

왼팔만 사용하는 불구의 몸이 되어 평생을 고향 집에서 칩거하다 작년에 사망함



왜 6월의 하늘이 저리 희뿌연 한지 모르겠다. 아마도 가신 임의 원한이 하늘 위를 떠돌아 그러는가 싶다. 나는 이맘때면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칩거하다 세상을 버린 유금상 소위를 그리워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유금상 소위는 1971년 서부전선 308고지의 대간첩 작전에서 간첩이 쏜 총알을 머리에 맞고 1년의 세월 동안 병원 생활 후 의가사 제대하고 그의 고향 전북 부안군 백산면 생가에서 칩거하다 작년 한 많은 생애를 마감했다. 대간첩 작전에서는 간첩 2명을 사살하고 1명은 생포했다. 나와는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다정한 친구였다. 나는 그가 평소 10여 년에 걸쳐 집필한 그의 회고록 “아버지를 두 번 죽인 육군 소위”를 출판사에 맡기어 출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가 작고하자 그의 영전에 이 회고록을 받쳤다. 그는 생전에 “회고록이라도 남기고 세상을 뜰 수 있어 다행이다.”라는 말을 했었다. 그 일에 일부나마 내가 기여했다는 사실이 보람이고 친구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유 소위는 온몸이 마비 상태였고 왼팔만을 움직이며 사용할 수 있었고 이 왼팔로 글을 썼다. 정신은 말짱했고 참으로 기가 막힌 운명으로 생을 이어갔다. 왼팔로 몸을 끌고 다니며 집안에서만 칩거하니, 마음이 오죽이나 답답했을까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겁다.

유 소위는 박영숙 여사와 부부의 연을 맺었고 슬하에 삼 남매를 두었으며 이 삼 남매가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히 아닐 수 없다. 미망인은 둘째 아들 집에 기거하고 있다. 그리고 유 소위의 고향 집은 큰아들이 내려와 기거하고 있어 이 또한 다행이라 여긴다. 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희한하고 예측할 수가 없다. 유금상 소위의 배필 박영숙 씨는 순애보 여사이다. 두 사람이 펜팔을 하다가 어느 날 박영숙 여사가 유금상 소위 집을 찾아와 보니 아뿔싸 참으로 기가 막힌 생활을 하고 있는 유금상 소위를 보고 이 남자를 위해 한평생을 헌신하리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에 유 소위는 방 한 칸을 내어주며 일주일만 있어 보라고 한다. 일주일이 아니고 2~3일만 지나면 줄행랑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여사는 떠나지 않고 유 소위를 평생 받드는 부부의 연을 맺는다. 참으로 고맙고 아름다운 인연이 아닌가? 생활은 연금을 받아 살았고 주위의 일체의 도움을 사양하며 올곧게 살았다. 신혼 시절에는 잠시 고향을 떠나 전주에서 살기도 했으나 고향 집에서 평생을 살았다.

이제 유 소위가 떠난 자리가 얼마나 큰 공간으로 자리했을까를 생각해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말해서 무엇하랴?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인간사 세상의 순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다만 그의 자식들과 미망인이 남은 인생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기만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최상섭(한국미래문화연구원 전 원장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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