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신생전북론] 한님과 광대는 '개벽의 산알'이다

22. 개벽광대론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4월 28일 18시41분

잡놈 광대를 자처하는 김석균 선생이 김제 원평 구미란 동학혁명 전적지에서 진혼의 춤사위를 하며 개벽의 산알 마당판을 열고 있다.

1. 나를 기르는 한님들

그간 동서양 철학의 이 다리도 긁고 저 다리도 긁어 봤다. 문득 나랏사람들이 만든 '님', '한'(恨이 아님 - 큰, 하늘), '마당', '판' '치배', '신명'.....등을 잊고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님은 지난 글에서 말했었다.

특히 '님'이야말로 나(주체)와 남(타자)의 기막힌 '어우러진 -한(큰)몸'(체體)이란 생각이 일었다. '어우러진 - 몸'은 서양철학의 '공유주체'나 '얽힌주체'와도 다르다. 님은 그리움의 대상만이 아니다. 만해가 쓴대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모두 님"이다. 님이 어찌 타자이겠는가? 내 안에 깊이 깃든 님은 주체와 타자로 구분되지 않는다. 자기동일화된 전체주의적 우상은 더더구나 아니다.

해월의 말로 님은 '기르는 하늘(양천養天)'이다. 님은 나를 기르고 나는 님을 기른다. '나 - 남'이 '님'이라는 '어우러진 한(큰)몸'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한(큰)몸으로 듣고 말하고 듣는 이야기가 있다. 님은 이상향이자, 듣고 말하는 이며, 기대는 이며, 내가 산산히 부르는 이며, 어둑새벽에 "서툰 글씨로 타는 목마름으로" 외치는 이며, 지금 여기에 없기에 무한한 그리움이다. 님이 없음이 서럽기는 하나, 서러워도 그리운 님이 있기에 오늘도 내일도 힘을 내 살아간다.

2. 개벽은 마당판의 광대놀이다

개벽은 '님 - 어우러진 한(큰)몸'이 벌린 마당판이며, 앞치배며 뒤치배가 신명이 나서 탁배기 마시며 노는 광대놀이다. 광대는 당대의 이단아이자 한세상 겨뤄 놀아 보는 개벽가들이다.

마당판에 들어선 모든 이들이 광대요, 개벽가요, 님이다. 마당판은 너, 나가 있으면서도 너나들이가 신나는 산알판이다. 신을 낳는 산알판이다.

광대를 비꼬아 꼭두각시, 괴뢰라고도 한다. 아니다. 광대는 박정희와 전태일을 그대로 드러낸다. 하지만 광대를 비꼬는 이들은 마음에 박정희, 윤석열, 이재명, 조국, 이준석 등을 담아 놓고는 그들을 감추거나, 거꾸로 자신은 사라지고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연호를 한다. 누가 괴뢰고, 누가 광대인가? 윤석열과 이재명을 지지할 수 있지만 그들의 괴뢰가 되는 경우를 이른바 '빠'라고 하지 않는가! 5년마다 주인을 바꾼다.

마당판을 여기저기 벌려야 한다. 마당판에서는 누구나 광대가 된다. 노동계급, 농민, 부르주아지가 구분되지 않는다. 광대놀이판 멍석을 까는 사건, 광대놀이 연행이 주체다. 어떤 노동계급, 공동체가 주체가 아니다. 특정 계급 주체가 아니어서 마당판이디.

3. 한님의 개벽마당

필자는 민족, 민중을 구원자(메시아)적 투쟁주체, 다른 말로 하면 이념적 혁명가들에 의해 투쟁 동원, 대상화하는 교리적 민족, 민중을 해체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주체와 타자의 마당판을 심고한다. 마당판의 광대들은 낱낱이(개인)도 아니요, 전체도 아니다. 한님들이다.

필자는 분명히 개벽마당판이 열리고 있다고 본다. 인구론(자원)에 강하게 의존한 자본경제가 저(무)출산 저항에 부딪혔다. 다른 것은 기후변혁이다. 젠더, 다양성 인정, 소수자운동이 가진 '개인의 재발견 경향'은 우려스럽지만 위계적 공동체를 해체하는 개벽성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또 지역소멸에 저항하는 지역화 운동도 개벽성이 있다고 본다. 지역화는 결코 국토 균형발전 같은 개발성장론이 아니다.

오래된 주제이고 사유이지만 주목받지 못하다가 최근 계급, 민족, 민중의 해체 경향과 함께 새롭게 창발되고 있는 생명운동, 생명의 정치도 주목할만 하다.

젠더, 녹색계급, 소수자, 비자원화 생명(저출산), 지역민, 분화된 노동(농민), 생명, 기후변혁 - 이들을 편의상 신주체라고 하자.

신주체들은 기존의 민족, 민중, 계급으로 포함 또는 포월할 수 없는 세력이고 경향이다. 필자는 이들 중 현재 진행형으로 가장 강한 개벽성을 가진 세력이 저출산 청년(비자원화 생명운동으로 호명하고 싶다.)과 비인간 활물인 기후(지구)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들 신주체들이 동맹을 형성하지 못하고 서로를 타자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신주체를 '산알의 마당판'으로 어우러지게 하는 광대패들은 출현하지 않았다

''내 안에 우주가 있다'고들 하고 ''그늘이 우주를 바꾼다"고 하는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사람의 마음이야 우주가 아니라, 빅뱅, 그 이전의 그 어떤 기(氣)에도 가 닿을 수도 있고, 미래의 종말적 한 점에 가 닿을 수도 있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몸은, 마음을 가지고 걸어다니는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다.

내가 본 우주가 맞는 것인지도 알 턱이 없다. 눈 앞의 밥그릇이 우주지! 우주가 따로 있겠는가라는 생각도 든다. 환경을 생각하면 내일 죽지만, 일자리가 없으면 오늘 죽는 노동자들이 가득한데 혁명이나 개벽은 한가한 타령이란 소리를 들을 법도 하다.

모든 개체개물이 우주의 산알이라는데, 이 어마무시한 말들이 끌을 갈고 톱질하는 목수의 먹물에는 잘 묻지 않다. 고대와 미래를 시간여행기로 왔다갔다하고, 한 점의 모래알로부터 우주적 차원 이동을 하는 사유가 부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은 암장부와 숫장부를 깎아서 맞춰야만 밥상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개벽은 한가한 헛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무어라 말을 하든지 간에 몇 푼 돈에 타협을 하고, 새벽시장에서 몇 백 원을 깎으려고 시끌시끌한데, 대한민국에서는 1년에 몇 만 개의 우주가 자살, 산재, 교통사고로 사라진다.

한 편에서는 몇 천 년된 음개벽과 그늘이 우주를 개벽한다고 말하는데, 한쪽에서는 하찮은 인간 하나를 쫓아내자고 말한다. 그 하찮은 인간 하나도 우주일 텐데 말이다. 어디 하나이겠는가? 이 나라 인구의 30%인 1천5백만 명이 하찮은 인간 하나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덩달아 놈과 년으로 천할 천 인내천人乃賤, 물내천物乃天이 되고야 만다. 그런데 그 하찮은 놈 또는 년이 5년마다 유랑하며 돌아온다는 것이다.

지난 촛불은 중심이나 원리가 없는 '무無의 공동체'이지 않을까? 그러니 촛불은 누가 끈 것도 아니고, 비상시국회의를 연다고 켜지는 것도 아니다. 박근혜 때의 촛불 연료와 윤석열 때의 촛불 연료가 다른데 투쟁선동자들은 이걸 잘 모르는 것 같다. 이태원에서 무고한 목숨이 숨졌는데도 촛불은 켜지지 않는다.

벽청(개벽하는 청년)들이 정읍 전봉준 고택에서 몸짓을 하고 있다. - 여행학교 학생들

4. 개벽의 산알 새청년들

그러거나 말거나 청년들은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저항을 하고, 지구는 태풍과 산불과 홍수와 폭설과 폭염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자원은 고갈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위계적 공동체를 해체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조직 없는 연대가 그런 뜻에서 '무無의 공동체'들이 일단의 청년들에게서 우후죽순으로 솟고 있다. 편의상 이들을 새청년이라 하자. 반대쪽 청년들은 '유有의 공동체'로 이런저런 성벽을 콘크리트처럼 쌓고 있다.

새청년들의 사유는 고정적이지 않고 오랑캐적이며, 소유보다는 접속과 공유적 네트워크를 중시한다. 국가와 지역보다는 자신들의 놀이판을, 국민보다는 끼리끼리를, 가족의 연장인 민족보다는 자유로운 연결망을 선호한다. 80년대의 민족과 민중을 해체한다.

내 눈에 청년들의 이런 경향은 정권 퇴진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고 개벽적이다. 민족 민중, 국가를 엄숙하고, 의무적인 공동체를 해체하고 있다. 나쁘지 않다. 민족•민중의 질풍을 살았던 필자 같은 세대들에게 새청년들이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민족•민중을 벗어나는 새청년들이 신통방통하니 그지없이 이쁘기도 하다.

나는 새청년들이 개벽가 없는 혁명, 목적하지 않은 혁명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목적성의 경로가 진보사상의 핵심인데 새청년들은 이미 탈진보의 마당판을 열고 있다. 탈진보가 보수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무의 공동체 개벽이다. 이야말로 김지하가 말한 '음개벽'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찢어진 사람, 그늘진 사람의 개벽영성이 깊은 우물에서 김을 피우며 알게 모르게 몸의 심장을 덮혀서 일파만파 사건의 연쇄파동으로 저항 없는 저항의 개벽으로 먹물처럼 번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개벽의 또 다시다.

개벽의 산알이 태동했다. 보이는가! 여기 피리 불며, 쇠치고, 북을 울리며 장고춤 추는 광대들이 오는 것을,

놈, 년, 주체, 타자도 아닌 개벽하는 한님들이 오고 있다.

/강주영(건축시공기술사·목수·전 교육부 대표 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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