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나무판에 새겨진 24살 청년의 유서

문정현 신부의 조성만 열사 유서 서각 첫 전시

기사 작성: 김상훈 - 2024년 04월 28일 16시24분

지난 1988년 5월 전북 출신 청년이 반미와 자주를 외치며 투신했다. 당시 24살이었던 조성만 열사는 ‘군사정부는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뛰어내렸다. 그의 죽음은 당시 교회와 사회, 정권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지난 2021년에는 민주주의 발전에 헌신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에 추서됐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오늘날, 조 열사의 정신을 다시 기억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조 열사와 인연이 있었던 문정현(84) 신부가 그의 유서를 나무판에 새겨 되돌아보는 전시를 마련한 것.

지난 27일 오후 3시 군산 하제마을에 열린 제41회 팽팽문화제는 ‘통일열사 조성만 요셉 유서 서각 순례 전시’가 함께 이뤄졌다.

문 신부는 지난 겨울 3개월에 걸쳐 가로 1미터, 세로 40~50cm 크기 나무판 9장에 조 열사의 유서 전문을 새겼다. 그는 “조 열사의 죽음 이후 우리는 여러 정권을 겪었지만 아무런 변화를 보지 못했다”며 “말하자면 군사독재 정권에서 검찰 독재로 바뀌었을 뿐 내용은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조 열사의 뜻이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은 유서 서각을 쓰는 것으로 이어졌다.

가톨릭 기도문으로 시작하는 유서에는 ‘한반도 통일은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막아져서는 안 된다’, ‘군사정부는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 ‘다가오는 올림픽은 반드시 공동개최되어야만 한다’ 등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당시는 광주 민주항쟁 과정에서 미국이 학살을 방조했다는 분노와 배신감이 팽배했기에 ‘한반도에서 미국은 축출되어야만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러한 점에서 서각 전시가 팽팽문화제에서 진행됐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문화제가 열린 군산 하제마을은 미 공군기지 탄약고를 확장하고자 국방부가 매입한 곳이다. 이후 마을에 600년 수령을 넘긴 팽나무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며 나무를 지키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나무와 우리 땅을 지키자는 목적으로 매달마다 팽팽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문화제 관계자는 “문정현 신부님은 팽팽문화제에 함께 하며 우리 땅을 지키려 하고 있다”며 “문화제에서 조성만 열사가 남긴 유서 서각을 전시할 수 있어 매우 뜻 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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