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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발걸음]고수 구암고인돌에 담긴 천문학적 지혜와 두평 유래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4월 22일 15시20분

고창 고수 구암마을 고인돌

고인돌을 매일 볼 수 있는 건 행운이자 즐거움이다. 언제부터인가 선사인들이 세운 고인돌의 의미를 그들의 눈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창의 모든 고인돌을 하나도 빠짐없이 조사하면서 선사인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고창의 고인돌 관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덕분에 다른 지역보다 잘된 편이다. 그러나 아직도 고창 곳곳에 확인되지 않은 고인돌들이 많다. 특히 고창의 동부산악지대인 영산기맥에 고인돌이 집중해 있다. 그런데 고수 두평리 일대의 골에만 고인돌이 조사된 것이 없었다. 이곳에도 분명 고인돌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두평리 일대는 골도 깊어 물도 많고 들도 넓어 일찍부터 농경이 발달할 수 있었다. 이런 곳은 오래 전부터 들이 넓어 살기가 좋은 환경이었다. 물론 인근 증산에서 약 5만2천년경의 호남 최고의 중기구석기 유적이 발굴되었다. 바로 옆 은사리 골에서도 수 십 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그런데 삶의 좋은 자연환경을 두루 갖춘 두평리에 선사시대의 고인돌 하나도 보고되지 않았다. 그러나 몇 해 전에 조사했던 구암고인돌을 잊고 있었다.

두평리의 고인돌은 구암마을회관 앞에 두 기가 있다. 규모가 큰 것 한 기와 남쪽으로 7m 정도 떨어진 곳에 한 기가 더 있다. 마을에서 큰 고인돌을 할아버지, 작은 고인돌을 할머니라 부르며 신성시 했다. 구암은 이 바위의 생김새를 거북으로 보고, 거북 구(龜)를 썼다. 그러나 후대 한자의 획수가 많고 어렵다하여 아홉 구(九)로 바꾸어 버렸다. 마을의 전통과 역사가 담긴 지명이 바뀌니 뭔가 허전하고 빈 것 같다.

이 고인돌은 아직 행정기관의 관리번호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바위의 패턴으로 보아 고인돌이 확실하다. 두 고인돌 간에는 남북축으로 연결되어 있고, 남쪽으로 목형의 봉우리와 일직선상이다. 이것만 봐도 선사인들의 의도성을 읽을 수 있다. 더 놀라만한 사실은 규모가 아주 큰 고인돌 형태와 그 속에 담긴 천체 움직임이다. 고인돌은 정삼각형에 가깝다. 서쪽 꼭지를 기준으로 시간의 표준이 되는 천문현상을 반영한다.

고인돌 서쪽의 꼭지를 중심으로 한 해의 기준이 되는 2지2분의 천문학이 담겼다. 거대한 고인돌을 어떻게 이동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이런 완벽한 태양의 움직임을 고인돌에 구현해 놓았는지 놀랍다. 고인돌의 꼭지와 중심축을 마을 주산과 맞추고 이를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의 일출 방향으로 놓았다. 그리고 동북쪽 고인돌의 변을 따라 낮이 가장 긴 하지 일출 방향이다. 동남쪽 고인돌의 변은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동지 일출 방향으로 맞춰 있다. 동남쪽 변에서 일출하는 동지에서 시작하는 새해는 춘분을 지나 하지가 되고, 다시 돌아 추분이 되고 마지막으로 동남쪽으로 태양이 일출하면 동지가 된다. 이때 일 년이 끝나 해넘이 축제와 한 해를 시작하는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고인돌에서 때를 관측하기도 했지만 그 시기에 맞춰 마을의 안녕과 평안, 그리고 풍년을 기원하는 해넘이와 해맞이 축제를 했을 것이다.

우연히 구해온 큰 바위가 이렇게 완벽하게 2지2분과 남북축으로 놓았을 리는 없다. 의도가 아니라면 이런 고인돌 배치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바로 옆 남쪽에 고인돌 한 기를 더 놓았다. 선사인들이 마치 “우연히 놓은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놓은 거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구암마을회관 앞 두 개의 바위는 선사시대의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은 무덤이 아니라 천제를 올리는 천문대 고인돌이었다.

한편, 법정리인 두평리는 두 자를 말 또는 됫박 두(斗)자를 써서 두평(斗坪)으로 썼다. 유기상 박사에 의하면, 본래 말치에서 나왔고 한다. 말치의 말은 됫박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한의 마나 모로비리의 모로, 말이, 마니, 모리, 머리와 같이 크거나 높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 의미와 관련 없는 쓰기 쉬운 斗를 써서 두평이 되었다. 오히려 클 대자나 태자를 삽입했다면 본래의 숨은 뜻을 잃지 않고 의미가 살았을 터이다. 우리의 자연과 어울린 마을의 고인돌이나 지명을 이해할 때마다 선조들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이병렬(고창 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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