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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감정 현상학

[책마주보기]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전오영)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4월 22일 08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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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본질을 탐구한 이 책은 바르트의 마지막 저서이다. 그는 기존의 사진 이론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사진이 지닌 감정을 파헤친다. 보편성 대신 개별성에 초점을 맞추고, 촬영자 대신 사진을 보는 자의 관점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사진을 제시하고 해석한다. 이때 스투디움과 푼크툼은 사진의 특수성을 해석하기 위한 사유 도구이다. 그에 따르면 르포르타주 사진(스투디움)은 객체적이라면 개인의 감정을 찌르는 사진은 푼크툼으로 우연성과 개별성 그리고 모험성의 특징을 지닌다. 즉, 스투디움이 정보 제공, 재현, 충격, 의미, 욕망 등 다섯 가지 기능으로 사진 해석의 보편적 방법인 데 반해 푼크툼은 사진의 가려진 부분에서 개별 감정이 생성된다는 것으로 비의도적이고 순간적이며 불가피한 특징이 있다. 예컨대 바르트가 우연히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사진, 이른바 ‘온실 사진’을 발견했을 때의 강렬한 감정은 의도하지 않은 감정의 분출로 푼크툼이 생성된 지점이다. 때문에 바르트는 푼크툼을 어떤 깨달음이 단번에 나타나는 것으로 선불교의 사토리(돈오돈수)나 하이쿠에 비견한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의 사진은 무의미한 하찮은 물건이 아니라 감정의 지시체로 변모한다. 바르트는 사진의 특수성과 지시체의 특수성을 연결하며 ‘그것은-존재-했음’이라는 사진의 본질을 추출한다. 사진에서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점은 사물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바르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이나 소통이 아닌 사진의 토대를 확립하는 지시대상에 있다. 사진의 본질 자체는 현상학에서 말하는 의식지향 대상으로서 노에마라는 것이다. 그에게 사진은 공적이기보다 사적 지시체의 기능이 강한 감정의 매개물이다. 그러니까 바르트는 사진을 어두운 방(카메라옵스큐라)이 아닌 “밝은 방”(카메라 루시다)에 가깝다고 언급한다. 사진의 노에마가 ‘그것은-존재-했음’이라는 존재 증명과 연결되듯 과거 그곳에 있었던 현실적 물체로부터 발산된 밝은 빛의 흔적 때문이다. 하여 바르트에게 ‘온실 사진’은 온실 속 그날 발산되었던 광선들의 정착지이며, 곧 어머니의 존재 흔적이다. 이렇듯 푼크툼이 작동하는 사진에는 사랑과 연민이 내재한다. 따라서 바르트의 사진론은 비의도적 감정의 발현으로써 사진의 감정 현상학이라 하겠다. 이미지의 진실과 현실 사이에 사진의 본성을 위치시킨 바르트의 사진의 존재론은 일견 하이데거적 현존재를 호명하기도 한다. 삶의 시간과 죽음의 시간이 겹쳐지는 사진 속 지시대상은 한순간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과거와 미래의 중첩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바르트는 이 책의 결미에서 사진을 환상적 이미지들의 문명화된 코드에 종속시킬 것인지 아니면 사진을 통해 현실의 깨어남과 대결할 것인지 묻는다. 사진 이미지를 해석하는 두 갈래 길에서 어느 길이든 선택해야 하지만, 바르트는 자신의 결정을 유예하면서 사진의 존재론을 견인하는 동시에 디지털 이미지가 대세를 이루는 시대적 미결정의 물음도 배면한다. 이미지에 종속되기보다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존재가 되라는 무언의 암시 때문이 아닐까.



전오영 작가는



'리토피아'에 시 '손톱 깎는 밤' 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저서로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수필집 '노을공책'이 있으며 현재 교육지원청과 교육문화회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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