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전북의 창]진정한 자연인과 산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4월 18일 14시38분

1988년 가을 나는 그냥 산이 아니라 국립공원으로서 지리산을 처음 만났다. 눈앞에 펼쳐지는 지리산은 웅장하고 장엄하기 그지 없었다.

노고단에서 바라본 산줄기는 아득하고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은 막힘이 없이 장쾌하고 신선했다.

천년사찰 화엄사계곡에서 뿜어나오는 새벽공기, 그리고 기암괴석 사이로 흘러내린 암반수를 보면서 나는 이자연에서 젊음과 청춘을 바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국립공원관리를 30년 넘게 해왔다.

자연은 사시사철 제각각 매력을 품고있기 때문에 어느계절이 가장예쁘다고 방점을 찍기가 쉽지않지만 내 생각에는 북서풍 칼바람을 견디고 피어난 봄은 과히 으뜸이다. 그중 4월을 이해인시인은 고운향기 느낄 수 있어 감격하고 꽃들 가득한 4월 길목에 살고있음이 감동입니다(중략) 라고 하듯 년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듯 싶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히고 뒷동산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치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이 매월당 김시습선생의 일일견산(日日見山)을 한다.

모기고(慕其高):산의 높음을 기리고

애기려(愛其麗):산의 수려함을 기리고

학기중(學其重):그 중후함을 기리고

우기구(友其舊):옛스러움과 벗한다.라는 뜻인데 속뜻을 헤아려보면 여러 가지 숨은 뜻이 있는 것 같다. 겸손과 예의,우직함,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영속성을 나타내 주는 한시(漢詩)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던지 크고 작은 산지로 이루어져있다.

산이 높고 장대하지 않더라도 산은 무수한 생명체를 잉태하고 키워내며 순환하며 에너지를 발산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향토성 짙은 그지역의 특색있는 문화를 아우르며 어머니 품자락같은 편안함과 안락감을 주는곳이다.

시간나는데로 생물다양성이 살아있는공간, 과거와 현재가 소통되는 역사성과 향토사을 간직한 동리 산들을 탐방하길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전국토의 70%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매년 대전만한 도시면적의 산림이 훼손되고 있다.

자동차를 가지고 길을 가다보면 교통량도 많지않은 시골도로를 마치 고속도로화 하기위해 산허리를 절단하여 대규모 절성토 구간들을 심심찮게 보게된다. 경관훼손 뿐만아니라 시골길은 우리의 정감과 아련한 추억이 깃든곳이고 느림의 미학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또한,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생태계를 이루며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훼손되고 파편화 되어 중소형 포유류들이 사라지고 이러한 변화는 생태계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환경이 오염되고 자연생태계가 훼손되면 우리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영속성을 가질수있을까?

6500만년전에 공룡이 사라지듯 우리도 사라질지 모른다. 즉,미래에 일어날일이 아닌 지금 우리세대에 위협적이고 지속가능하지않는 환경이 얼마든지 올수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생태환경을 잘보전하지 않으면 길가에 계절마다 예쁘게 꽃을 피어올린 앙증맞은 꽃들을 더 이상 보기도 쉽지않을 것이다.

4월의 봄은 진달래와 유채꽃이 만개하고 계곡엔 벚꽃이 피고지고 이산저산에 산벚이 야단법석이다.

미풍에 흔들리는 나뭇잎은 연푸른색으로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마치 13살 여자아이가 처음으로 한뜸한뜸 수놓은것처럼 순수하고 신선하다.

이제곧 번식기에 접어드는 산새들의 합창과 애벌레를 찾는 오색딱따구리의 경쾌한 리듬은 덤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자연의 거대한 생명체인 산은 삶을 늘 풍요롭고 에너지 넘치게 만들어준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TV다큐드라마인 자연인을 시청하고 있다

바쁜일상에 사로잡혀 살아온 삶에 염증을 느낀 현대인의 로망일수도 있겠다 싶다.

자연(自然)이란 정중동(靜中動)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은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가만히 있는것같아도 쉴새없이 광합성을 하고 뿌리는 자양분을 만들고 빨아들이며 스스로 물을 찾아 수십미터를 가기도 한다.

자연이란 용어가 갖는 느낌으로는 그러려니라는 생각도 든다. 많이 들어왔던 낱말이다. 어렸을적에 마음에 좋지않던일이 있는 경우 우리 어머님께서 토닥거리시면서 해주셨던 말씀이다. 웬지 그러려니 하고 읊다보면 손해보고 억울한 마음이 사라지고 편해진다. 요즈음 나는 운전할 때 갑자기 새치기 하고 들어오면 크락션을 울리거나 상대운전자를 비방하지 않는다. 그러려니 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 때문이다.

산에 산다고 해서 모두 자연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산에 살지않는다고 해서 자연인이 아니라고 말할수도 없다. 자연인이란 사전적의미는 권리의무를 갖는 주체이니 우리모두가 자연인이라고 말할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자연인은 꼭 자연속에 살지않더라도 무위자연의 깨달음을 알고 깨끗하고 순수한사람. 모든 동식물생명체에 대한 소중함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되돌아볼일 하나없는 허허로움으로 나비처럼 훨훨날아 진정한 마음의 자유를 얻는자 일 것이다./정장훈(국립공원공단 전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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