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온누리]용(龍)에게서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1월 02일 14시47분

새해의 첫날이 밝았다. 올해는 청룡의 해이다. 해맞이의 성지 호미곶에 3만의 인파가 몰렸다하니 새해에 바라는 소망이 그 어느 해 보다도 간절하다는 것이 실감난다. 아마도 엊그제 마무리한 지난 해가 그만큼 혹한이었다는 반어일 것이다.

청룡은 명당과 연관지어 자주 등장하던 좌청룡 우백호 중의 하나이며, 고구려 고분이나 백제의 송산리고분군, 능산리고분군의 무덤 내부에 벽화로 그려진 사신도에 등장하는 네 종류의 신비한 동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동쪽의 진호를 맡고 있는 청룡은 힘과 용맹, 지혜와 권위의 상징이다. 임금과 관련된 용안·용상·곤룡포 등의 용어도 용이 가진 권위에서 나온 말이다.

어디 이뿐이랴. 용은 우리 역사 이래로 삶의 고비고비마다 희망의 상징이었다. 땅이 쩍쩍 갈라져 농사를 짓기 어려운 가뭄이 계속되면 흙으로 용을 만들어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냈고, 고기잡이 나갈 때는 풍어를 기원하며 용왕제를 지냈다. 농사가 주를 이루는 농촌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짚으로 용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하고, 그 용줄을 당산나무에 감아놓아 한해의 풍년을 기원해 왔다. 이제는 대부분 사라져 문화재로나 남아있지만, 물을 관장하는 신비의 동물 용은 농경이 삶의 터전이었던 우리 곁에 풍요와 번영의 상징으로 가까이 있어 왔다.

이같이 신비의 동물 용이 역사 이래로 오랫동안 우리의 삶과 함께 해 왔기에 청룡의 해를 맞이하여, 제 역할을 해달라는 바람과 지난 해의 어려움은 가져가고 잘 지켜 줄 것이라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것 같다.

그러한 기대와 달리, 사실 역사 속에 보이는 청룡의 해는 눈에 띄게 믿음직했던 때는 별로 없는 것 같다. 60년마다 한번 씩 맞이해 왔으니 서기로부터 시작하면 청룡의 해, 즉 갑진년은 올해가 34번째이다. 조선시대 이후의 갑진년을 사서에서 찾아보면, 조선 성종 때인 1484년에는 경국대전이 마무리되어 나라의 기틀을 다져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현종 4년 1664년 갑진년의 경우에는 전국에 전염병이 크게 번져서 함경도, 경상도, 강원도 등지에서 앓는 자가 속출하였는데, 함경도에서는 270여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황해도에서는 소전염병이 번져 1천여 마리의 소가 병으로 죽어 나가는 시련이 닥치기도 하였다. 1904년 갑진년에는 한일의정서가 일제에 의해 강제조인되면서 우리 강토가 맥없이 군용지로 점탈당하였고, 철도부설권과 연안어업권을 빼앗겨 식민의 수렁으로 더 깊이 빠져 들어가게 되는 해가 되었다.

희망 가득찬 연초에 재 뿌리는 것도 아니고 너무 암울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리 녹록치 않은 한 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막연한 희망 대신 지금을 제대로 볼 줄 아는 혜안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지혜의 동물 용(龍)에게서./문이화(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새전북신문 기자의 최근기사

[온누리]용(龍)에게서

[온누리]헌법 전문(前文, Preamble)

[사설]전주 완주 통합, 주민 공감 얻는 게 우선

[삶의 향기]4월은 새롭게 도약하는 계절

[전북의 창] 임실 신흥사 목조 제화갈라보살상 재발견

[박용근의 황희 리더십의 비밀]황희 정승의 뜻을 이어 나라와 백성을 위해 공훈을 쌓아 위상을 높인 후손들

[오늘의 길목]“상하농원”의 숨겨진 ‘치유’

[사설]지역축제, 눈치보며 취소할 일 아니다

[문화로 이야기 꽃]차 한잔은 사회자본의 다리

[사설] 기록물, 기탁과 기증 활성화 시급

[온누리]시력이 같아도 안경 굴절력(도수)은 다를 수 있습니다!

Leave a Comment

많이 보는 기사

파면 선고에 눈물 흘리는 시민들

윤석열 파면 선고로 축제 분위기

파면 선고에 환호하는 시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