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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가는 계절 익산의 미륵사 둘레길을 걷자

신정일(문화사학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대표)이 띄우는 가을 편지

기사 작성:  이종근
- 2021년 10월 19일 14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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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가 유행하면서 나라 안에 많은 길들이 만들어졌다. 제주 올레 길, 지리산 둘레길, 해파랑 길, 변산 마실길을 걷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나선다, 그 중 역사와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길로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미륵산 자락을 휘감아 도는 미륵산 둘레길이다. “장소가 회상시키는 힘은 크다. 어디를 걷든지 우리는 역사의 유적 위에 발을 디디는 것이다.”로마의 정치가 키케로가 말했던 그 장소가 바로 미륵산 둘레길이 아닐까.

익산과 전주 인근의 사람들이 즐겨 찾는 미륵산(430m)은 높이가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평지돌출의 산이라서 광활하게 펼쳐진 호남평야를 굽어보는 산이고 산 중턱에 사자암이 있다.

마한의 왕궁터라고도 하고 백제의 네 번째로 도읍지로 조성되었을 것이라고 전해오는 왕궁평에 있는 왕궁리 오층석탑에서부터 미륵산 둘레길은 시작된다.

“왕궁평은 용화산에서 남으로 내려온 산자락이 끝나는 곳에 있으며, 마한 때의 조궁 터라는 성터가 남아있다. 이 성은 돌을 사용하지 않은 토성으로 그곳 사람들이 밭을 갈다보면 기와 조각이 깔려 있고, 더러 굴뚝들이 나온다. 종종 옥패와 동전, 쇠못 등을 습득했다.”

조선 시대 말에 간행된 「금마지」에 실린 글인데, 」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왕궁정은 군의 남쪽 5 리에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옛날 궁궐터라고 한다. 늠름하면서도 아름다운 왕탑이 국보 289호로 지정되어 있는 왕궁리 오층석탑이다.

미륵사탑이나 정림사지 석탑과 같이 백제탑이라는 설도 있고 탑신부의 돌 짜임의 기법과 3단으로 된 지붕돌 층급받침 때문에 통일신라 탑이라는 설도 있다. 왕궁 탑을 지나 금마 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들판 한가운데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석불이 마주보고 있다. 보물 46호로 지정된 동고도리 석불은 높이가 4․24m에 이르고 불상의 머리위에는 높은 관을 얹었는데, 동고도리라는 뜻은 금마가 예전에 도읍지였기 때문에 고도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고도리라고 부른다. 그곳에서 익산 쌍릉이 멀지 않고, 비산비야의 산길을 넘어가면 미륵산 아래 미륵사지에 이른다.

“하루는 백제 무왕이 부인(신라 진평왕의 선화공주)과 함께 사자사로 가려고 용화산 밑 큰 못가까지 왔는데, 미륵불 셋이 못 속에서 나타나 왕이 수레를 멈추고 치성을 드렸다. 이에 부인이 왕에게 “여기다가 꼭 큰 절을 짓도록 하소서. 저의 진정 소원이외다” 하였다. 왕이 이를 승낙하고 지명법사를 찾아가서 못을 메울 일을 물었더니 법사가 귀신의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미륵불상 셋을 모실 전각과 탑, 행랑채를 각각 세 곳에 짓고 미륵사라는 현판을 붙였다. 진평왕이 장인들을 보내어 도와 주었으니, 지금도 그 절이 남아 있다.“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실린 미륵사 창건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2009년 1월 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발견된「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에 사택적덕(沙宅積德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우리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 善因을 심어...정재淨財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 기해 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다.”

동서로 172m 남북으로 148m에 이르는 미륵사터는 넓이가 2만5천 평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절터로서, 국보11호로 지정된 미륵사지 9층 석탑이 얼마 전에 복원되었고 1993년에 복원된 동석탑 그리고 당간지주가 있는데 다른 절과는 달리 2기가 있다.



사람들은 말하네, 세월이 가는 것 조차

잊어버린 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그날이 온다고,



바람과 구름과 새들도 말하네.

잊어버리고 기다리면,

그분이 오실 거라고,



흐르는 세월이 말하네, 그리움이 사무치고 깊어져

눈물의 강이 바다에 이르면 모두가 꿈꾸는

미륵의 세상이 환하게 열릴 것이라고,



미륵사에서 함열 쪽으로 조금 가면 삼거리에 이르고 그곳 연동리에 석불사가 있다. 보물 제45호로 지정된 연동리 석불좌상의 두툼한 어깨와 태산이 무너져도 흔들림이 없을 것 같은 묵직한 몸체 뒤편에 광배가 있다. 다시 길을 나서 1914년에 사라진 옛 고을 여산 동헌과 천주교의 성지인 백지사 터를 보고, 여산송씨 제각과 문수사를 지나서 국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이병기 생가에 이른다. 이곳에서 조선 중기에 대제학을 지내 소세양의 묘소가 지척이다. 나라 안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개성 기생 황진이와 사랑을 나눈 소세양의 묘소를 지나 함벽정을 거쳐 보석박물관을 지나서 다시 왕궁탑으로 회귀하는 길이 미륵산 둘레길이다. 역사가 있고, 문학이 있는 삼국유사의 산실인 이 길을 천천히 걷다가 보면 이 땅을 살다간 옛사람들을 만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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