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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아버지 자리

윤철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09월 17일 14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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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내가 걸어가고 있다. 동네의 가풀막진 골목길을 오르고 있는 그의 어깨는 하루의 고됨이 내려앉아 다소 무거워 보이지만 발걸음은 제법 가볍다. 까맣고 묵직한 비닐봉지가 그의 손에 매달려 있다. 오늘이 월급날이거나 밀린 품삯을 받았으리라. 그다지 넓지 않은 그의 등판을 석양볕이 토닥이며 힘을 보탠다. 해 질 녘의 기분 좋은 나른함 사이로 내 아버지가 내려앉는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가 술 마시고 들어오시는 날이 좋았다. 그런 날은 빈손으로 들어오시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피아니시모로 들리던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면 누었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아 입맛부터 다셨다. 아버지는 옷도 벗기 전에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쭉 앉혀놓고 시멘트 부대로 만든 종이봉투에서 풀빵이나 군고구마를 꺼내 나눠주셨다. 어느 때는 당고나 찹쌀떡 장수를 데리고 와서 그의 하룻밤 장사를 떨이하기도 했다. 그런 날은 매운바람의 지문이 유리창에 가득한 겨울밤에도 집안에는 훈기가 가득했다. 한 세대를 건너뛴 짧지 않은 세월에 씻겨 기억조차 없을 법하건만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풀빵을 나눠주시며 빈구석 하나 없이 웃음이 가득했던 그런 날의 아버지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는 안다. 아버지의 넉넉한 웃음 뒤로 보이지 않게 가려져 있던 가장의 무게를.

거창한 꿈과 야무진 다짐으로 살아왔지만 나 역시 아버지의 자리에 머물고 말았다. 구겨진 채 길바닥을 뒹구는 휴지처럼 가볍고 시시하게 여겨도 할 말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스스로에겐 부끄럼 없이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이었다. 고비도 많았다. 인생의 굽이마다 비틀거리면 부축해주고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 세워준 버팀목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라는 거룩한 부담감이었다.

요즘은 가정을 책임지는 여자도 많지만 대부분 가정에서는 남자들이 가장의 짐을 지고 산다. 덜어낼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가장의 무게는 일상 전반을 짓누르는 누름돌이다. 아버지 자리에 서게 되면 아주 사소한 일부터 버거울 정도로 힘겨운 일까지 쉼 없이 많은 일들이 성난 빗줄기처럼 몰아친다. 웬만한 수모는 감내하게 되고 아주 드물게는 비겁하다는 마음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불의를 묵과하는 일까지 생긴다. 목적은 오직 하나다. 내 가족을 지키는 것, 세상에 약한 남자는 있어도 못난 가장은 없는 법이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 가장의 자리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시가 있다. 안도현 시인의 《모과나무》란 시다.

"모과나무는 한사코 서서 비를 맞는다 / 빗물이 어깨를 적시고 팔뚝을 적시고 아랫도리까지 / 번들거리며 흘러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 비를 맞는다. 모과나무 / 저놈이 도대체 왜 저러나? / 갈아입을 팬티도 없는 것이 무얼 믿고 저러나? / 나는 처마 밑에서 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 모과나무, 그가 가늘디가는 가지 끝으로 / 푸른 모과 몇 개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 끝까지, 바로 그것, 그 푸른 것만 아니었다면 / 그도 벌써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왔을 것이다"

골목길 깔끄막을 올라채는 사내의 휘적거리는 걸음에도 까만 비닐봉지는 별다른 흔들림 없이 매달려 함께 걷는다. 저 남자 인생의 중심추가 저 까만 비닐봉지 안에 담겨있음이 분명하다. 무겁게 느껴질 때도 많았겠지만 아마 오늘만큼은 버겁지 않으리라. 사내의 모습에서 내 아버지의 웃음 띤 얼굴을 본다.

내일은 아버지 산소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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