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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창] '고향(故鄕)’을 생각하며
2017년 10월 12일 (목) 정민섭(시인/전북여고 교사) APSUN@sjbnews.com
   
 
   
 
명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으레 고향을 찾는다. 그리운 것이 참 많기 때문이다. 요즘엔 명절의 긴 기간을 이용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한다. 그 여행길에도 고향 생각이 함께하리라 본다. 사전에 의하면 고향(故鄕)이라는 말의 뜻에는,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에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겨나기 시작한 곳 등으로 풀이되어 있다. 이러하니 우리는 어떤 뜻에 의지하든 ‘고향’을 하나쯤은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대체로 고향이란 산이며, 들이며, 언덕이며, 논밭이거나, 흐르는 시내나 강변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이미지와 부모의 숨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반드시 죽마의 벗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몇몇은 꼭 남아 있게 마련이어서, 고향에 가기만 하면 막역한 벗과 일가친척과 이웃들의 이야기가 강물처럼 넘쳐흐른다. 누군가 가고 없어도, 말이 없어도, 그 안에 흐르는 마음의 강물은 항상 따스한 노을빛으로 새겨진다.
그러고 보니 고향에 대한 생각이 참 낭만적이다. 그런데 이런 낭만에 대비되는 또 다른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한 풍경 하는 듯하다.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말 그대로 고향의 이름만 가슴에 남아 있는 실향민, 취업도, 결혼도 여의치 않아 불편한 마음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젊은이, 도시의 요양원에 몸을 맡기고 정작 고향에는 가지 못하는 요양자와 그 부양자들, 또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옮겨 다니면서 남들이 고향을 이야기할 때면 입을 닫고 마는 도시 유목민(?), 시골 마을이 어느 날 갑자기 신도시로 바뀌어 예전의 공간을 찾지 못하는 신도시 실향민, ……, 아니 고향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현대인도 부쩍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끔 아이들에게 물어 본다. 고향이 어디냐고. 아이들은 대부분 머뭇거린다. 어떤 아이는 전주요! 하고 외친다. 그러면 전주 어디? 하고 다시 물으면 00아파트요, 00산부인과요, 00산후조리원이요 등등의 대답이 나오면서 모두 한바탕 웃거나, 말하는 아이는 말끝을 흐려 버리고 만다. 사실 어린 시절에 이사 몇 번 하고 나면 아이들은 아파트 이름조차 잊어버린다. 아이들은 고향에 대해 말하는 것에 자신이 없다. 과거의 노랫말 속에는 무척이나 ‘고향’이라는 말이 많았다. 가곡이나 시나 유행가 중에는 ‘고향’이라는 어휘가 심심치 않게 쓰여 심금을 울렸으나, 오늘날 젊은이가 부르는 노래 속에서는 ‘고향’이라는 어휘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고향은 ‘과거’라는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어느 순간 계륵과도 같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초현대인에게 고향을 묻는 일은 별반 의미 없는 일이거나 심리적 부담만 안겨 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이 아이들만 겪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현대의 도시인은 고향 말하기에 이처럼 자신이 없어지고, 말할 수 있는 고향마저 점점 상실하거나, 특정할 수 없어서 잠재적 실향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과거와 다르고, 사고방식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달라졌다. 이제 명절에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것을 탓할 수 없고, 고향을 잘 모르는 것을 나무랄 수도 없다. 다만 명절을 맞아 부모와 조상을 생각하는 그 마음만은 놓지 않아야겠다. 그래도 여전히 고향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 명절이면 열차며, 고속버스는 만원 승객이다.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고 있다면, 그 선산에 여전히 집 떠난 새들도 찾아들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와 조상과 고향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서 도리에 밝고 공익심도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고향 상실의 시대, 잠재적 실향의 시대에, 앞서 언급한 고향의 네 가지 뜻 가운데 어느 한 가지 뜻에라도 부합하는 그런 마음의 고향 하나라도 있다면 근원을 잃은 쓸쓸함은 덜할 것 같다. 긴 명절, 구름 따라 가는 그곳, 코스모스 환한 고향의 꽃길에, 오면서 가면서 모두 풍요롭고 안녕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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