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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남원 마을
2017년 09월 13일 (수) 이종근 문화교육부 부국장 jk7409@sjbnews.com
   
 
   
 
‘우리 마을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마을의 형성과 유래, 설화와 풍수지리가 지속가능한 문화관광상품으로 부활한다. 남원시는 농경문화가 중심이 되어 형성된 자연마을에 대해, 마을이 만들어지면서 있었던 설화와 풍수지리 그리고 씨족의 정착사를 발굴했다.
남원시는 우선 79개 마을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유래판을 설치했다. 마을 유래판은 마을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집성촌을 이루게 된 역사와 조상들이 정착하게 된 경위를 잘 말해주고 있어서 청소년들의 가족사랑 정신과 애향심 함양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죽동(高竹洞)은 도통동에 속하는 법정동이다. 고산마을은 지형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굴속같이 아늑하다고 해서 고산골이라 부른다. 황죽마을은 자연생 대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는데, 무령군 유자광(柳子洸)이 태어나자 대나무가 누렇게 말라 죽었다고 한다. 이는 유자광이 태어나면서 마을 정기를 다 뽑아 대나무가 누렇게 죽은 것이라고 하며, 이후로 마을 이름을 유자광이 대나무 정기를 타고 태어나 대나무가 누렇게 변했다고 해서 ‘누른대’로 고쳐 불렀다. 그 후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황죽이라고 부른다.
고산마을은 역사적으로 남원에 전란이 있을 때마다 피난처였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남원성이 함락될 때에도 많은 피난민들이 몰려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정착하한 바, 이 중에 김씨와 박씨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뒤 1800년경 황죽마을 쪽에서 이씨와 양씨들이 이주해와 마을이 형성됐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황죽리와 고산리를 합쳐 고죽리라 해거 왕치면에 편입됐다. 이후 1956년 왕치면이 폐지되어 남원읍으로 편입됐고,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폐합함에 따라 남원시 고죽동이 됐다.
여원치(女院峙)는 이백면 양가리와 운봉읍 장교리 사이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때 운봉현까지 왜구의 침략이 잦았다. 고개마루 주막집을 들락거리던 왜구는 주모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에 주모는 왜구에게 더럽혀진 왼쪽 가슴을 잘라내고 자결했다. 한편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려 운봉에 당도한 이성계는 꿈에 노파로부터 싸움을 이길 수 있는 날짜와 전략을 계시받은 뒤 대승을 거둔다. 이성계는 꿈에 나타난 노파가 왜구의 손찌검으로부터 자결한 주모의 원신이라고 믿고 고개마루 암벽에 암각과 사당을 지어 여원(女院)이라고 불렀다. 이같은 사연으로 여원치라 불리게 됐으며, 이를 연재라고도 부른다.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고, 인문학적 환경을 개발하고 인적자원을 활용하는 일은 살아있는 우리들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과제가 아닌던가. 도내 14개 시군마다 우리 마을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를 고민하며 마을 유래를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이종근(문화교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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