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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사직단(社稷壇)
2017년 09월 12일 (화) 이종근 문화교육부 부국장 jk7409@sjbnews.com
   
 
   
 
남원 용정동(龍井洞)은 마을 안에 용정(龍井)이라는 샘이 있었던 바, 이곳에 용이 살 았다고 해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때문에 조선시대 국가의 안위와 향토의 수호신을 모신 남원도호부의 사직단(社稷壇)이 자리했고, 고려시대 이후 관내 사찰인 대복사의 음기 진압의 풍수지리가 인근에 널리 알려졌다.
‘사직’이란 땅과 곡식을 의미한다. 즉 ‘사(社)’는 국토를 수호하는 신이며, ‘직(稷)’은 곡식의 풍요를 관장하는 신이다. 이에 나라를 세우면 왕이 반드시 사직단을 만들어 백성을 위한 제사를 지냈다. 따라서 사직은 종묘와 함께 국가자체를 의미하여, 국가의 존망은 곧 종묘사직의 존폐로 표현됐다.
현재 우리나라엔 보물 제177호 사직단 대문, 사적 제121호 사직단, 대구시 기념물 제16호 노변동 사직단, 전북 기념물 제79호 남원 사직단, 충북 기념물 제157호 보은 회인 사직단, 경남 기념물 제255호 산청 단성 사직단, 경남 기념물 제278호 창녕 사직단이 문화재로 지정됐다. 서울 종로 사직단은 조선 태조 3년(1394)에 세웟으며, 각 지방에도 이를 세우도록 해 원님이 고장의 평안과 풍년을 빌게 했으며, 가뭄이 심할 땐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서울에 사직단이 세워짐에 따라 남원도 이 시기를 전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 일제 침략으로 전국 사직단이 거의 파괴됐으나, 남원 유림들에 의해 유지 보존되어 오고 있는 등 조선 초에 세워져 현재까지 전해지는 제사 공간으로서 귀중한 자료이다.
전주읍성은 객사에서 보았을 때에 좌묘우사(左廟右祠)를 배치됐다. 좌측엔 공자묘(대성전)와 경기전과 조경묘를, 우측엔 사직단(현 기전여고 자리)을 배치했다. 전주향교는 1603년 이 좌묘우사, 즉 객사에서 남면한 바, 좌측에 문묘(공자의 사당), 우측에 사직단을 배치하는 옛 법도에 어긋난다고 해서 부성 밖 동편인 지금의 자리로 다시 이전했다.
2014년, 일제시대 ‘국폐소사(國弊小社)’였던 전주신사의 모습이 광복 후 최초로 공개됐다. 사직단 터에 도민의 성금과 강제 동원으로 건설돼 당시 일제의 만행을 엿볼 수 있다. 이때 전주엔 국폐소사 전주신사 외에 1914년 조성된 다가산 전주신사와 1919년 마쓰모토 테쓰조(松本哲三, 송본철삼)가 만든 길야산 개인 신사 등 3개가 있었다.
사직단이란 성황사(城隍祠), 여단(厲壇)과 함께 3사라하여 고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곳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전주부 서쪽 3리에 사직단이 있다고 한 바, 지금의 기전여고 건물 동편의 작은 산봉우리를 말한다. 매년 두 번의 정례적인 제향이 있었으며 전주부사가 제주가 되어 향사했다. 남원 사직단을 잘 보존 관리하고, 전주 사직단을 복원해 민족정기를 살릴 방법을 찾았으면 얼마나 좋을까./이종근(문화교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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