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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은 힘이다
[영화에서 음식을 맛보다] ■써니 - 비빔밥
2017년 09월 07일 (목) 송영애(전주대학교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 APSUN@sjbnews.com

   

여고 시절은 써니다
< 써니>(Sunny, 2011). 2011년에 개봉하여 관객 수가 700만이 넘은 흥행영화다. ‘sunny’는 햇살이 내리쬐는 화창한 날, 그리고 젊은이라는 의미다. 영화 주제곡도 Boney M의 Sunny다.
나미(심은경)는 아버지의 발령으로 꼬막 나는 동네, 벌교에서 이대 많이 들어간다는 서울 학교로 전학을 하게 된다. 전학 온 첫날부터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한바탕 웃음을 준다. 서울 친구들은 모두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는데, 혼자 스펙스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한참 예민한 여고생 나미는 기가 죽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에는 시골에서 전학 왔다는 이유로 놀림만 당하다가, 할머니에게 배운 오리지널 버전(?) 벌교 욕으로 당찬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때 보여준 의외의 모습에 친구들은 점점 나미를 챙겨주기 시작한다. 심지어 일곱 명의 여고생들이 언제까지나 함께 하자는 맹세를 하며 일명 칠공주 모임인 써니를 결성한다.
칠공주는 쉬는 시간에도 매점에 모두 모인다. 수다는 단팥빵이나 써니텐 하나 물어야 멈춘다. 점심시간에는 서로 싸 온 도시락으로 비빔밥을 비벼 먹는다. 이 장면이 압권이다. 물론 음식 전공자의 눈에는 음식만 보이고, 기억하겠지만 비빔밥은 두 번이나 등장하여 스크린을 맛있게 채운다.
< 써니>는 여고 시절을 그리며 웃음도 주었다가, 눈물도 주는 영화다. 칠공주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여고 시절은 말 그대로 “sunny~”다. 그리고 2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각자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서로가 가장 행복했던 여고 시절을 “가장 찬란한 순간, 우리는 하나였다.”고 회상한다.

그때는 고소한 맛, 지금은 서글픈 맛
고등학교 때 한 달에 한 번은 분단 별로 비빔밥을 비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일명 “비빔밥 비벼 먹는 날”이다. 이름도 참 소박하다.
지금처럼 흔한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도 몰랐고, 빼빼로데이도 없었던 시절이라서 “00데이”라고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던 시절이다.
분단장은 전날에 미리 필요한 물건이나 재료를 나눈다. 양푼, 주걱, 고추장, 참기름, 통깨, 나물 반찬, 달걀 프라이로 필요한 것이 제법 있다. 다음날이면 누구도 어김없이 챙겨온다.
큰 양푼을 보자기에 싸지도 않고 털털하게 들고는 만원 버스를 탄다. 남학생 앞에서도 창피한 줄도 모른다. 혼자서는 못 하는 일이지만, 친구들과 함께라면 언제나 용감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고추장은 밀폐 용기도 아닌 그릇에 대충 담아서 온다. 심지어 흐를 때도 있다. 오전 수업시간 내내 짭짤한 냄새가 진동한다. 비빔밥 먹을 생각에 선생님 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4교시 끝나는 종이 울리면, 먼저 큰 양푼에 각자가 가지고 온 밥을 담는다. 고추장, 나물을 넣고 비빈다. 참기름은 마지막에 넣는다. 어느 분단의 비빔밥이 더 빨갛고, 고소하냐가 문제다. 분단 별로 만드는 비빔밥의 맛은 경쟁이다.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힘이다. 숟가락으로 소복이 떠서 볼이 미어지게 입속에 넣는다. 이제는 빨리 그리고 많이 먹는 일만 남았다. 체중 걱정도 필요 없다. 우리는 선생님들의 늘 같은 말에 세뇌당한 지 오래다. “대학 가면 살이 쪽 빠진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현실 안에서 살은 대학 가서 더 찐다. 심지어 나이와 비례해서 정확하게 늘어난다. 이렇게 비극적인 사실을 고등학교 때부터 안다는 것은 요즘 학생들 말로 낭만 1도 없는 것이다. 선생님의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청춘을 위한 배려로 덮어두자.
지금이야 학교급식으로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일은 없지만, 예전에는 점심과 저녁밥으로 두 개씩 들고 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득 아련하게 생각나는 친구들과 함께 비벼 먹던 비빔밥 맛이야말로 여고 시절에 비빔밥 좀 비벼본 학생들은 누구나 공감하는 맛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었음을 알려주는 얄밉고, 야속하며, 서글픈 맛이기도 하다.

비빔밥, 족보 들춰보기
우리 지역에 산다면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고문헌이 있다. 바로 시의전서(是議全書)다.
심환진(沈晥鎭, 1872~1951년)이 경상북도 상주군수로 부임하여 1919년경에 그곳의 반가(班家) 즉 유가(儒家) 집에 소장되어 있던 조리책 하나를 빌려서 명치 44년(1911)에 설립된 대구인쇄합자회사(大邱印刷合資會社)에서 인쇄한 상주 군청의 편면괘지(片面罫紙)에 모필로 적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심환진이 직접 필사한 것은 아니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아무튼, 이 책은 며느리 홍정(洪貞) 여사에게 전해져 내려온다. 이후 1970년대에 홍정의 조카인 탐구당 출판사 홍성우 대표를 통해 한양대학교 이성우 교수에게 전달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1981년에는 같은 대학의 이효지 교수가 「시의전서의 정리학적 고찰」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2004년에는 ‘우리음식 지킴이’ 회원들에 의해 누구나 알아보기 쉽도록 음식 사진과 더불어 만드는 방법을 현대어로 고쳐 책으로 펴냈다.
시의전서는 상·하 2편 1책으로 17×24.9cm, 77매로 되어있다. 내용을 보면 음식 조리법으로 상권에 226가지, 하권에 196가지로 총 422가지가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다시 주식류, 부식류, 후식류, 주류, 양념류, 저장식품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중요한 내용은 9첩, 7첩, 5첩 반상과 곁상, 술상, 신선로상, 입매상(잔치 때 큰상을 받기 전에 먼저 간단히 차려 대접하는 음식상) 등의 상차림 법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조리법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시의전서의 가치를 크게 평가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학자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상주시는 올해부터 1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시의전서 전통음식 명품산업화 사업’을 3년 동안 추진할 계획이며, ‘조선시대 500년, 우리나라 전통음식의 완결판’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시의전서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성은 전주를 대표하는 향토음식 비빔밥에 대해 한자로는 ‘汨董飯’, 한글로는 고어로 ‘부븸밥’이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이기 때문이다. 부븸밥 만드는 방법도 쓰여 있다.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아 넣고, 간납(간과 천엽)을 부쳐 썰어 넣고, 각색 나무새(채소)도 볶아 넣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 부숴놓는다. 고춧가루,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계란을 부쳐서 골패짝 만큼 썰어 얹고, 완자는 고기를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비비어 밀가루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
간납전과 고기 완자를 올린다는 점에서는 오늘날의 비빔밥 모양새와는 조금 다르다. 또 미리 밥을 비벼서 담는 것을 보면 말장난에서 나온 지금의 일반적인 형태인 ‘비빌 밥’이 아니라 ‘진짜 비빔밥’이다. 넓게 생각해보면 ‘비빌 밥’이건, 이미 ‘비벼져 나온 비빔밥’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팔이 안으로 굽은 소리지만 비빔밥은 맛있다. 아니, 안으로 굽다 못해 꺾어져도 같은 말을 할 것이다. ‘비빔밥은 언제나 맛있다.’
전주에는 “음식 장사로 돈 많이 버는 것은 수치다.”라고 말씀하시는 전주비빔밥 명인도 있다. 1952년에 개업하여 3대를 이어가는 전주비빔밥 명소도 있다. 비빔밥을 내놓는 식당도 있고, 비빌 밥을 내놓는 식당도 있다. D-50을 향해 달리고 있는 전주비빔밥 축제도 있다.
지금을 두고 ‘전주비빔밥의 춘추전국시대다.’라로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제 전주음식문화를 체계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지혜로운 제자백가(諸子百家)를 기다린다. 나아가 높은 식견을 가진 음식에 대한 가르침(諸子食敎)도 기대해본다.

송영애(전주대학교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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