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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에 빠진 대한민국-가맥은 기억으로 마시는 술이다
[영화에서 음식을 맛보다] ■치맥
2017년 08월 10일 (목) 송영애(전주대학교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 APSUN@sjbnews.com

   

-오지랖도 넓은 맥주
치맥. 치킨과 맥주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치맥에 이어 햄버거와 맥주의 ‘햄맥’, 피자와 맥주의 ‘피맥’, 그리고 바비큐와 맥주를 함께 즐기는 ‘바맥’까지 등장하였다. 맥주가 어떠한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 사교성이 좋은 술임에는 틀림이 없다.
맥주는 음식을 넘어 책과도 잘 어울리고 있다. 맥주 파는 서점으로 일명 ‘책맥’이다. 이 외에도 ‘당맥(당구+맥주)’, ‘요맥(요가+맥주)’, ‘핑퐁맥(탁구+맥주)’까지 있다. 이 정도면 사교성을 넘은 오지랖도 참 넓은 맥주다.
1990년대 프로야구가 호황기를 맞으면서, 치킨과 맥주의 인기는 점점 올라갔다. 2002 FIFA 대한민국·일본 월드컵에서 ‘치맥’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였다. 2002년 월드컵이 남긴 여러 가지 중에서도 대표할만한 것은 대한민국 4위 우승,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 그리고 붉은 악마와 길거리 응원으로 본다. 그러나 음식 전공자의 시선에는 역시 ‘치맥’이다.
예전에 통닭을 먹을 때는 탄산음료가 짝꿍처럼 붙어 다니며 느끼함을 없애주었지만, 지금은 맥주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제 축구경기를 보기 위한 준비는 치맥 주문에서 시작된다.
2013년에 방영된 ‘별에서 온 그대’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전지현이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며 말한다.
“눈 오는 날엔 치맥인데….”
사실 눈과 치맥은 큰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이 대사 한 마디가 불러일으킨 열풍 덕분에 치킨에 맥주를 마시는 것은 유커들에겐 한국에 가면 한 번쯤 해봐야 하는 체험 관광 상품이 되었다.
지난달 청와대에서는 재계 총수들을 초청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치맥 간담회’다. 우리는 치맥 시대를 살고 있다.
오른손에는 맥주잔, 왼손에는 닭다리 하나 들고, 마시고 뜯기를 반복한다.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태 6:2~4).”

   

-물에 빠진 닭과 기름에 빠진 닭
< 집으로…>(The Way Home, 2002). ‘꼬마 유승호’, 그리고 ‘물에 빠진 닭고기’를 생각할 것이다. 맞다. 프라이드치킨이 먹고 싶은 손자에게 닭백숙을 내민 할머니 사이의 황당한 세대 차이를 그린 영화다.
가정 형편으로 인해 엄마(동효희)는 상우(유승호)를 시골에 계시는 친정엄마(김을분)에게 맡기게 된다. 상우는 외할머니와 단둘이 지내게 되는데….
글도 모르고 말도 못 하는 77세 외할머니와 철없는 말썽꾸러기 7살 상우의 하루하루가 참 답답하다. 상우는 게임기 건전지 하나를 사기 위해 잠든 외할머니의 머리에서 은비녀를 빼가고, 좁은 방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화가 난다고 요강을 발로 차 깨고, 놀부보다 더한 심술보다. 지루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치킨이 먹고 싶어진다. 손짓 발짓으로 할머니에게 닭을 설명한다. 할머니는 손자를 위해 깨끗하게 말려 둔 시래기를 들고 장에 간다. 시래기를 판 돈으로 닭 한 마리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푹 삶아낸 닭다리 하나를 쭉 찢어서 상우에게 건네자 상우는 울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켄터키 치킨이야? 몰라? 내가 프라이드라고 했잖아. 누가 물에 빠트리라고 했어? 싫어. 안 먹어.”
소리치며 울다가 끝내는 밥그릇을 던지고 마는 미운 일곱 살이다. 할머니에게 닭은 백숙이고, 손자에게 닭은 프라이드치킨이다.

   

‘백숙(白熟)’은 고기나 생선 따위를 양념하지 않고 맹물에 푹 삶아 익혀서 만든 음식을 의미한다. ‘삼계탕(蔘鷄湯)’은 어린 햇닭(軟鷄)에 인삼, 대추, 찹쌀 등을 넣어서 고아 만든 보양식으로 여름철에 즐겨 먹는 음식이다. 따라서 백숙 중에 하나가 삼계탕이라고 보면 된다.
‘통닭’은 1961년 ‘명동영양센터’의 전기구이통닭이 원조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익혀낸 형태라서 통닭으로 이름 지어졌다.
‘치킨’은 치킨 프랜차이즈의 원조인 림스치킨이 1977년 신세계 백화점에 처음 문을 열 때 사용되었다. 통째로 튀기지 않고, 여섯 조각으로 나누어 튀겨냈다.
‘프라이드치킨(Fried Chicken)’은 조리법이 더해진 요리명이다. ‘튀긴 닭고기’라고 보면 된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Kentucky Fried Chicken)’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KFC를 말한다. 켄터키는 창립자인 커넬 샌더스(Harland David Sanders, 1890~1980)가 젊은 시절에 일했던 곳이며, 1980년 죽음 앞에서도 켄터키 주에 묻히길 원했다.
‘양념치킨’은 프라이드치킨을 고추장, 마늘, 물엿 등의 양념에 버무린 한국화 된 미국 요리로 보면 된다.
결론은 닭이 주재료인 삼계탕, 백숙, 통닭, 양념치킨까지 모두 맛있다. “치느님은 언제나 옳다.”고 하지 않았던가.

   

-너희들이 가맥 맛을 알아?
여름철에는 해마다 맥주 전쟁이다. 국산 맥주, 수입 맥주 그리고 수제 맥주로 3파전이다. 결론은 모두가 승자다.
몇 해 전부터는 맥주축제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부산에서는 뮤직 페스티벌로 변신한 렛츠런파크 맥주축제가 2회째 열렸다. 강원도 홍천에서는 ‘홍천강 별빛음악 맥주축제’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오비맥주는 오는 19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2017 카스 블루 플레이그라운드’를 개최할 예정이다.
맥주가 있는 축제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축제는 대구 치맥페스티벌이다. 2013년에 개그맨 전유성이 이끄는 철가방극단의 닭 위령제로 축제는 시작되었다. 올해로 벌써 5회째다. 현장은 맥주보다 치킨이 주인공이다. 다이어트는 잊고 즐겨야 한다.
우리 지역도 뒤지지 않는다. 전주 모래내 시장에서 열리며 2회째인 치맥가맥 페스티벌과 3회째인 전주 가맥축제가 있다. 모두 8월에 열리며, 전주 가맥축제는 어제 개막했다.
축제의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구 치맥페스티벌은 중국 칭따오 맥주축제에 뒤지지 않고, 전주 가맥축제는 대구 치맥페스티벌에 뒤지지 않는다. 몇 년 후에는 ‘전주 가맥축제를 가본 사람과 가보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게 될 것이다.’
전주에서 가맥 좀 먹어본 사람들은 맥주 맛보다 가맥 맛을 즐긴다. 가게 안에 손님이 가득 차면 바로 밖으로 나와 맥주 박스를 찾는다. 길가에 맥주 박스를 뒤집으면 탁자가 되고, 하나 더 뒤집으면 의자가 된다. 시원한 맥주에 북어포 뜯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과감하게 팔과 다리를 모기에게 내주고, 옆으로 지나가는 차량의 조명 좀 받다 보면 맥주 한 짝 정도는 우습다. 이 맛에 가맥집을 찾는다. 가맥집에서 맥주 맛은 중요하지 않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 전주에서 진짜 가맥집은 00가맥이 아니라 ‘00슈퍼’다. 00가맥, 00편의점은 최근에 생긴 가맥집이라 향수가 없다는 의미다. 담배 냄새 쪄들은 어두컴컴한 슈퍼에서 부서지게 생긴 플라스틱 의자 하나 끌어다가 앉는다. 새우깡 한 봉지 뜯어 놓고 맥주를 따른다. 주인 할머니는 ‘네가 알아서 먹고 가라.’는 표정으로 눈길도 주지 않는다.
가맥은 술맛이 아니다. 그때 그 시간을 기억하는 맛이다. 마셔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안다.

송영애(전주대학교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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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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