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판소리로 만나는 외국 소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

기사 작성: 김혜지 기자 - 2016.10.30 19:44

소리꾼 이자람이 판소리로 풀어낸 마르케스의 소설은 관객에게 선사한 드라마 한 편이었다. 지난 29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명품연극컬렉션의 마지막 순서인 ‘이자람 판소리-이방인의 노래’가 펼쳐졌다.
콜롬비아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1993년에 발표한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을 판소리로 풀어냈다. 남미 소설을 기반으로 판소리를 한 것도 드물지만 1인 3역을 능숙하게 표현했다. 소리꾼 이자람과 고수, 사다리 위로 올라타 있는 기타연주자. 무대 위는 세 사람으로 채워져 은은한 조명과 함께 어우러졌다.
작품은 카리브 해의 한 나라를 통치하다 권력을 뺏기고 망명 생활을 하던 전직 대통령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를 찾으면서 오메로와 라사라 부부를 만나게 되는 내용이다. 한때 권력과 명예의 중심에서 살았던 노인이 세월이 흘러 경제적 능력도 없고 병에 걸린 상황에 이른다. 이때 만난 앰뷸런스 기사 오메로는 그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돕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의 아내 라사라는 이 상황을 부정하고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불만을 토로한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인 ‘인연의 소중함’은 판소리로 풀어내 절절함이 더해졌다. 소리와 함께 작은 부채를 펼쳤다 오므리는가 하면, 의자를 이쪽저쪽으로 옮겨 각 상황과 분위기를 묘사했다. 부채와 의자를 도구삼은 소리꾼 이자람의 몸짓은 이야기 속 상황을 관객들의 눈앞에 그려냈다.
우유부단하면서도 정 많은 오베로, 날카로운 라사라, 근엄하고 무덤덤하기 만한 전직 대통령. 세 사람의 특징을 담은 각기 다른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극을 이끌었다. 다시 소리꾼 이자람으로 돌아와 틈틈이 들려주는 그의 작창은 잔잔한 극의 흐름에 재미와 생기를 불어넣었다.
관객들의 웃음소리와 장단에 맞춘 추임새는 소리꾼 이자람의 흥을 더 돋웠다. ‘물라토라 하믄/ 백인과 흑인을 섞은 혼혈인을 말한다’ 북 혹은 기타 연주를 배경으로 ‘카리브 해’, ‘물라토’, ‘빠에야’ 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단어를 아니리 형식으로 설명해 작품을 이해시키기도 했다. 북 장단에 맞춰 읊어지는 외국어, 기타 선율은 이질감을 주기보다 더 맛깔스러운 가사로, 기타소리가 가야금 소리로 재탄생되는 듯 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여운이 남은 듯 관객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박수를 이어갔다. 효자동에 사는 강 모씨는 “혼자서 세 사람의 역할을 해낸 이자람 씨의 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며 “외국 단편 소설을 판소리로 풀어낸 것은 처음 보는데 신선하고 재밌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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