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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육성으로 전하는 신상옥- 최은희부부의 탈출기
[주말엔-MOVIE] 연인과 독재자
2016년 09월 22일 (목) 김선중 전주영화제작소 영화관 운영매니저 APSUN@sjbnews.com

   

신상옥-최은희 부부는 두말할 것 없는 영화사의 슈퍼스타이며, 전설이다. 요즘 시대의 톱스타들과 비교하려해도 당시의 위상과 업적, 풍성한 필모그래피, 산전수전을 겪어온 인생사 등을 고려하면 섣불리 비교할만한 영화인이 떠오르지 않을 지경이다. 작업해온 영화들만으로도 충분히 전설로 남을 인물들이지만 이 부부가 역사적인 인물들로 기억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북한으로부터 납치를 당했던 이력 때문이다. 남한과 북한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시대에 남한 최고의 영화인을 북한이 납치했던 이 사건은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막힌 사례다. <연인과 독재자>는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겪은 상상 이상의 실화를 담아낸 귀중한 증언록이다.

1960년대 당대 최고의 스타 부부였던 신상옥, 최은희는 1970년대에 들어 정부의 탄압, 재정문제, 이혼 문제 등에 직면하며 위기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1978년, 최은희는 지인들과 함께 홍콩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1월 17일 실종이 되고 만다. 이 소식은 외신에서 대서특필되었고 신상옥 감독은 아내의 행방을 찾기 위해 홍콩으로 떠난다. 그러나 홍콩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그 역시 7월19일에 실종되고 만다. 불과 반 년 동안 한 나라의 최고 스타가 종적을 감춰버린 것이다. 두 사람을 납치한 것은 놀랍게도 북한 공작원이며 지시를 내린 것은 다름 아닌 당시 북한정권의 수장인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 이었다.

   



20~30대 이상의 세대들이라면 신상옥-최은희 부부의 납치 사건은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 면에서 2016년 신작 다큐멘터리로서 상영되는 <연인과 독재자>는 폭로영상보다는 무용담으로 규정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시각적으로 어필해야할 영화임에도 텍스트, 사운드로서의 이야기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은밀하게 진행된 납치극이라는 점, 1970년대라는 시대배경을 생각하면 부부의 납치과정이 담긴 영상자료들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대신 <연인과 독재자>는 사건의 상황과 유사한 이미지가 담긴 신상옥 감독의 영화 속 장면들을 발췌하여 시각적인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굳이 배우들을 기용해 재연하지 않는 것은 사건에 대한 타인의 해석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한 전략이다.

시각적 흡인요소가 적다는 핸디캡, 장르를 취한 극영화가 아닌 전형적인 다큐멘터리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연인과 독재자>는 때때로 농밀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것은 일본어로 증언하는 신상옥의 육성이 담긴 녹취 테이프다. 공작원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하고, 다시 붙잡혀 5년간의 감금생활을 했던 사람이 조심스레 흘리는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가득하다. 반면 생존해있는 최은희 배우와 진행된 인터뷰는 사건의 여파가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북한의 납치를 다룬 작품인 만큼 <연인과 독재자>의 또 다른 결은 김정일이다. 특히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녹취한 김정일의 육성에는 그가 정권 안에서 스스로의 입지를 다져야만 했고, 그 맥락에서 자국영화산업을 개선하려는 욕망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청난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은 오히려 천편일률적인 신파극을 경멸했다. 때문에 단 하나의 사상을 허용하며 개인의 의견이 묵살되는 사회풍토를 가진 북한에서 신상옥-최은희 부부는 당대 남한에서 겪을 만한 물질적, 정치적 제약이 없는 영화 제작 환경을 누릴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같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은 김정일이 그토록 바라던 예술성 있는 영화를 북한사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서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반도 땅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의 연출자는 공교롭게도 영어권에 살고 있는 로버트 캐넌과 로스 아담 감독이다. 전혀 연고가 없는 그들이 <연인과 독재자>를 만들게 된 까닭에 관해 “이 사건에 대해 들었을 때 이 스펙타클한 이야기가 왜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 사건이 수많은 루머에 묻혀 사실이 부정되기도, 혹은 목적에 의한 거짓으로 여겨지기도 했기에 감독은 사건에 대한 해석은 최대한 관객들의 몫으로 넘겼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때문에 <연인과 독재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건을 관련 당사자들의 입으로 다시 듣는다는 일차적 접근법에만 의존하는 영화라는 점이 곧 포인트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글자로 읽는 사건과 당사자들의 생생한 육성으로 듣는 사건의 무게감은 비할 바가 아니기에 <연인과 독재자>는 누구나 혹할 수밖에 없는 무용담이다.



/김선중 전주영화제작소 영화관 운영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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