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시인의 '내가 읽은 책'          

사람이 사람인 까닭

이 동 희 (시인·표현문학회장)

재주가 덕을 이기는 경우(才勝德)를 목격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덕이 재주를이기되(德勝才), 그 이긴 덕이 상황 논리에 휩싸여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를 목격하는 일도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저 서슬 푸르던 5공 시절, 우리에게는 석학 문교부 장관을 가지고 있었다. 필자는당시에 캠퍼스를 가득 채운 풍물패의 쟁쟁거리는 소리와 거리에 충만하던 최루탄 가스 속에서 눈물 콧물을 흘리며, 한 석학의 정치적 진로에 대한 안타까운처신을 비판하면서도 마침내는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필자의 학문적 시발점에 흔들리던 방향타의 키를 잡아준 영향도 그렇지만,필자가 인생의 여정 중에서 가장 값지게 빛나야 할 도정(道程)으로 간주하고 있는 문학하는 이유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간 존재의의미와 그것을 밝혀 가야할 과제와 에너지를 동시에 안겨 주었다는 뜻이다.

이로부터 필자는 비로소 학문이 대답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 질문을 만들어 가는과정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으며, 이로부터 필자는 문학이 인생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발굴해 가는 끝없는 과정이라는 책무를스스로 끌어안게 되었다,

이규호. 그는 독일 튜빙겐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교육학과 역사학을 수학하였으며,그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석학이었다. 그의 탁월한 철학적 연구 성과들은 '사람됨의 뜻' '말의 힘' '앎과 삶' '현대인을 위한10가지 덕성론' '교육과 정치' '교육과 사상' 등의 저술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저술들은 우리에게는 생소하던 언어철학을 바탕으로 철학적 인간학을접목하여 인간 존재의 의미를 명쾌하게 파헤친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言語哲學'이라는 부제가 붙은 '말의 힘'이 주는 철학적 힘을이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체감하고 있다. 그것은 내 사유의 중심을 관통하는 출발점임과 동시에 문학의 자장권을 형성하는 화두가 되고있다는 점이 필자 스스로에게 증명해 준다.

'이야기의 현상·말의 의미·말과 기호·말의 심리 현상·말과 생각·말과 얼·우리말의논리·말과 삶·말과 사람됨·말의 변질·말과 교육·말과 철학·말놀이의 모델·말의 윤리'라는 내용들이 강하게 뒷받침해 준다. 그것은 철학이 우리의현실적인 삶과는 일정한 간극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는 형이상학임과 동시에 우리의 삶을 구체화시키는 뫼비우스의 띠-클라인씨의 물병임을 보여주기에과부족하지 않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자아의 연결고리를 밝히려면 언어 말고는 달리 찾을 길이 없다. 그래서 "언어가 우리의 현실을 창조하는 것과 언어가 우리의 사람됨을 창조하는 것은 서로 불가분의 필연적인 보충관계를갖고 있다."는 지적은 '말과 사람됨'의 관계를 밝히는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그것은 언어가 우리의 삶의 세계를 밝힐 뿐만 아니라. 우리의사람됨도 역시 언어를 통해서 이룩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앎의 즐거움과 동시에 섬뜩한 언어관을 심어 준다.  

그러나 어이하랴. 그 좋은 연구 성과들로 이룩한 학덕(學德)이 독재자의 부름을받아, 이 땅에 가장 치열했던 저항의 불길을 잡아야 하는 하수인으로 쓰였음을. 그래서 필자는 현실의 좌표가 흔들릴 때마다, 이 낡은 책을 꺼내보기를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바로 지행일치(知行一致)의 전제인 언행일치(言行一致)에 있음을 반추한다.

'말의 힘-언어철학(言語哲學)'

*저 자: 이 규 호

*출판사: 제일출판사

*발행일: 초판(1968), 필자소장본(1976)